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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무조건 두려워할 건 아니다
우리 기업들이 몸집 불리기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는 ‘증자(增資)’라는 말만 알았지 ‘감자(減資)’는 뭔지도 몰랐다.
하지만 IMF체제 이후 경제전반의 거품이 빠지고 구조조정이 일상화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합병이나 매각 등을 위해 감자를 실시하는 기업들이 여기저기서 등장했다.
감자계획이 알려지면 대부분 주가가 떨어진다. 특히 IMF체제 초기에는 ‘감자를 실시할지 모른다’라는 말만 돌아도 투자자들이 주식을 무작정 내다파는 투매현상이 벌어지곤 했다.
감자란 무엇인가
감자는 말 그대로 회사의 재산인 자본금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회사의 재산을 줄이는 대신 그 돈을 주주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실시하는 수도 있고, 이미 기업이 부실화되어 회사의 순자산가치가 자본금을 밑돌 경우(즉,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는 경우)에 자본금을 순자산가치에 맞게 줄이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감자는 후자의 경우에 실시하며 기존 주식의 소각이나 병합을 통해 이루어진다.
주주의 권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므로 상법상 감자는 기본적으로 주주총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금융기관의 경우는 특별법인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 의해 금융감독위원회가 부실금융기관에 대해 감자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 경우 이사회의 결의만으로 감자를 실시하게 되며 기존주주들에게는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여 정부가 주식을 사들인 뒤 유상소각한다. 이때 매수청구가는 회사와 주주가 협의해서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실제로는 기업의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감안해 공인회계사가 산출하는 게 대부분이다.
감자비율에 대해서는 특별히 정해진 조항이 없지만 주식을 병합(또는 소각) 후 1주당 가격이 액면가를 웃도는 수준으로 정하는 게 보통이다.
감자가 주주의 재산가치에 미치는 영향
홍길동 씨는 주식시장에서 1만원에 거래되는 활빈당㈜의 주식 100주를 갖고 있었다. 이론상 활빈당의 자본금 가운데 홍씨의 몫은 ‘5,000원(액면가)×100주=50만원’이고, 실제 시장가치는 ‘1만원×100주=100만원’이다.
그런데 활빈당의 경영상태가 극도로 부실해져 순자산가치가 자본금보다 밑돌게 되자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통해 기업회생을 꾀하기로 했다. 실사를 통해 10대 1의 감자비율로 감자를 실시했다. 활빈당 기존주주의 지분을 10분의 1로 낮춤으로써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한편, 나머지 10분의 9는 채권단에게 진 빚을 주식으로 전환하여 채권단이 90%의 지분을 갖는 새 최대주주가 된 것이다.
만약 감자를 실시하지 않았다면 채권단이 90%의 지분을 확보하여 경영권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기존 자본금의 9배나 되는 돈이 들어가야 하므로 출자전환이 어려웠을 것이다.
10대 1로 감자를 실시함에 따라 홍길동 씨의 주식은 100주에서 10주로 줄었다. 자본금 가운데 홍씨 몫도 ‘5,000원×10주=5만원’으로 줄어들어 큰 손해를 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감자절차 기간중 매매정지되었던 활빈당 주식이 변경상장되어 다시 거래되기 시작할 때 시장가격은 증권거래법상 감자비율의 역수인 10배가 곱해진다. 즉, 활빈당의 1주당 가격은 10만원이 되기 때문에 홍길동 씨가 갖고 있는 주식의 시장가치는 ‘10만원×10주=100만원’으로 감자 이전과 마찬가지다. 이론상 감자는 주주의 재산가치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다.
감자 공포증세
그런데 왜 투자자들은 ‘감자 공포증세’를 보이는 것일까.
감자 후 재상장시 주식가격은 감자비율의 역수를 곱해준다고는 하지만 이 같은 주가가 유지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위에서 예를 든 활빈당의 주가도 10만원으로 거래가 재개되지만 동종업종이나 비슷한 형편의 기업주가와 비교해볼 때 그 가격을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또 감자에 이어 증자를 통해 활빈당의 주식이 다시 늘어났기 때문에 주식가치가 희석되어 결국 가격이 급락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IMF체제 이후 1999년 상반기까지 감자를 실시한 51개사의 주가는 감자 후 변경상장한 날로부터 1개월간 평균 1.4% 떨어졌다. 주가지수와 비교하면 12.3%나 손실이 났다.
금융 구조조정의 첫단추였던 제일은행의 경우 1차로 감자를 실시하고 정부의 공적 자금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실화가 지속되었다. 결국 소액주주 지분을 다시 전량 유상소각해야 했던 점이 감자공포증을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감자 후 이루어지는 증자의 규모나 증자에 참여한 자본의 성격이 기업 경영혁신에 큰 도움이 되어 영업전망이 확실히 개선될 것으로 판단되면 투자자들은 감자 이후에도 이 기업의 주식을 기꺼이 살 것이다. 당연히 주가가 급등한다.
아남반도체가 대표적이다. 아남반도체는 감자를 마치고 1999년 8월 7,980원으로 재상장한 뒤 무려 열흘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끝에 2만4,150원으로 주가가 200% 이상 뛰었다. 반도체경기 활황과 시점이 맞아떨어진데다 워크아웃 조건이 좋아 재무구조가 크게 좋아졌고 감자비율도 1.2873대 1주로 낮았기 때문이다.
감자에 대해 무조건 공포심을 갖는 것도 도움될 게 없지만 반대로 막연한 기대감을 품는 것도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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