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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어음은 위험천만
어음폭력단 수법
동서기업 박사장은 연말 어음을 지급하는 데 2,000만원이 부족하게 되어 사채업자인 김사장에게 부탁하여 사채를 얻기로 했다. 그러나 김사장이 "어느 정치가가 다음해 선거자금으로 20억원 정도의 돈을 준비하고 있는데 선거까지 그 돈을 어음할인의 형태로 빌려주기로 되어 있다. 얼마를 빌려주는지는 상대방과 교섭해서 내쪽에서 기입하기 때문에 금액, 지급기일 등을 공란으로 한 어음이 필요하다."고 요구하여 일주일 후에 현금을 건네받기로 하고 박사장은 금액, 발행일, 지급기일, 수취인을 기입하지 않고 발행인만을 기입한 약속어음 한 장을 김 사장에게 건네주었다.
어음을 건네주고 나서 일주일이 지나도 김사장에게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전화를 해보았지만 연락을 취할 수가 없었다. 다급해진 박사장은 김사장의 사무실로 찾아가 보았지만,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고 김사장은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박사장은 어음을 사기당한 것을 알았다.
이 경우, 박사장은 김사장을 사기죄로 고소할 수 있다. 그러나 증발해버린 자를 잡는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설령 김사장을 잡더라도 어음을 찾기는 힘들다. 사기당한 어음은 사채업자의 금융 브로커 사이를 전전하며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폭력단, 해결사
어음 수표 사건에는 흔히 폭력단이나 해결사가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과연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일까.
폭력단이라는 것은 어음을 사기치는 일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자를 말한다. 사기친 어음은 시중의 사채업자(고리대부)와 금융 브로커에게 싼값에 양도된다. 여러 사람에게 양도된 후 선의의 제3자의 손에 양도되어 선의의 제3자가 지급을 요구했을 때, 어음을 사기당한 사람은 "사기당한 어음이니까 지급을 할 수 없다."라고 주장할 수 없다. 여기서 선의의 제3자란 사기당한 어음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어음을 취득한 자를 말한다.
이에 반해 해결사란 사기당한 어음을 피해자의 의뢰에 따라 회수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자를 말한다. 하지만 이들도 폭력단과 마찬가지로 많든 적든 폭력과 협박에 의해 회수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백지어음이란
앞의 예에서 동서기업이 발행한 어음과 같이 금액, 지급기일, 발행일, 수취인 등을 기재하지 않고 발행한 어음을 백지어음이라고 한다.
어음은 금액, 지급기일, 발행일 수취인 등이 기재되어 있지 않으면 완전한 어음이 아니다. 일부분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백지어음은 미완성인 어음 또는 불완전한 어음이 되게 된다.
백지어음을 받은 사람은 공란(백지 부분)을 기재해서 완전한 어음으로 해서 교환에 돌리지 않으면 지급을 받을 수가 없다.
백지어음이라고 해도 금액과 지급기일이 백지인 것은 좀처럼 없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금액을 백지로 해서 발행한 어음이 이리저리 양도되어 선의의 제3자로부터 청구된 경우에는 지급을 거절할 수가 없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하다.
이런 백지어음이 많다
백지어음의 대부분은 발행일이 백지인 어음과 수취인이 백지인 어음이다. 이 중에서 특히 많은 것은 발행일 백지어음이다. 어음상의 발행일은 실제 발행일과 달라도 유효하고, 발행일을 어느 날짜로 하든 이는 지급기일과 달리 발행인에게 있어서 불이익이 생기지 않는다. 발행일은 어음의 기재사항 중에서도 가장 중요성이 적기 때문에 경시되고 있는 것이다.
발행일을 백지로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발행일이 2월 1일이고 지급기일이 9월 30일인 기간이 긴 어음을 발행할 경우에 발행일을 기재하면 지급기간이 긴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므로 발행인의 자금사정이 어렵다는 인상을 주고 더 나아가서는 그 어음의 신용이 의심스럽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취인을 백지로 하는 수취인 백지어음의 경우는 금액과 지급기일이 백지와 같은 위험이 없기 때문에 수취인 기재의 수고를 줄이고 교부한 상대에게 기재시키기 위해 백지로 하는 경우가 있다. 또 수취인으로부터 수취인 백지어음을 요구받는 경우도 있다. 수취인 백지어음이라면 어음의 교부를 받은 사람이 배서와 같은 방식에 따르지 않고 그대로 어음을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백지어음의 교환
백지어음은 백지부분이 기재되어야(이것을 보충이라고 한다) 비로소 완전한 어음이 된다. 보충이 있기까지는 미완성한 어음에 불과하기 때문에 백지어음인 채로 어음금을 청구할 수는 없다.
백지부분이 보충되면 완전한 어음이 되고 발행인과 배서인은 어음금의 지급의무가 생긴다.
백지부분을 보충할 수 있는 권한을 보충권이라고 부른다.
백지어음을 취득한 사람은 누구든 백지를 보충할 수가 있다. 백지어음을 받은 사람은 백지를 보충하고자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있고 백지어음인 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도 있다.
물론 발행인은 "백지어음은 적법한 어음금의 청구가 아니다"라고 해서 어음금의 지급을 거부할 수가 있지만 지급을 거부한다 하더라도 어음의 소지인은 백지를 보충해서 다시 교환에 돌릴 수가 있으므로 발행인은 발행일과 수취인이 백지인 어음이라도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또한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백지수표(어음)보충권 부여증'이라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서류가 있는데, 견질(담보)로 받은 백지수표(어음)을 합법적으로 보충하여 사용하기 위해 미리 발행인으로부터 받아놓은 서류이다.)
하지만 배서인이 있을 때는 그렇지 않다. 배서인은 발행인이 어음금을 지급하지 않을 때에는 어음금을 지급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어음소지인이 배서인에게 지급을 요구하려면 "지급기일(정확하게 지급기일과 그 후 법정공휴일, 일요일을 제외한 3영업일 이내)에 발행인에게 어음금의 청구를 했지만 지급을 거절당했다."와 같은 요건이 필요하다.
발행인이 지급해주지 않은 경우, 어음이 돌아오고 나서야 당황해서 백지를 보충해서 다시 교환에 돌려도 그때는 이미 지급기일이 지나버리므로 지급기일에 정식적인 어음금의 청구를 했다는 조건에 해당되지 않게 된다.
발행인에게는 지급할 돈이 없어도 배서인에게는 어음금을 지급할 자산이 있게 마련이다. 배서인에게도 어음금을 청구했는데도 청구할 수 없게 되어, 대금을 뻔히 보면서 놓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따라서 백지어음을 받으면 반드시 백지부분을 전부 기입하고 나서 교환해 돌리도록 한다.
백지어음의 위력
백지어음을 발행해도 수취인이 발행인과의 약속대로의 내용을 기입해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약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깨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또 처음부터 약속을 깰 작정으로 백지어음을 발행하게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100만원이라도 기재받은 약속으로 백지어음을 발행해도, 수취인이 500만원이라고 기입해서 사정을 모르는 제3자에게 양도하면 제3자는 500만원짜리 어음인줄 알고 발행인에게 청구한다.
이 경우, 발행인은 어음을 소지하고 있는 제3자에 대해 백지의 보충이 약속을 위반하고 있다고 해서 지급을 거부할 수는 없다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발행인은 500만원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지인이 백지의 보충이 약속을 위반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경우(이것을 악의의 제3자라고 한다)와 중대한 과실에 의해 몰랐을 경우(중과실의 제3자)는 이러한 원칙은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럴 때에는 100만원을 지급하면 되지만 악의와 중과실이 있었던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가능한 한 백지어음이나 백지수표는 발행하지 않는 편이 좋다.
백지어음의 정정
금강산업이 대신상점 발행, 수복공업 배서의 약속어음을 받았을 때, 그 수취인란이 백지로 되어 있었다. 금강산업은 교환에 돌리 때, 수취인란에 수복공업이라고 써야 할 곳에 깜빡 잊고 금강산업이라고 기입하고 말았다.
수취인란에 수복공업에 정정하는 데는, 발행인인 대신상점과 수취인인 수복공업의 승낙이 필요한지, 그렇지 않으면 기입한 금강산업이 마음대로 정정해도 좋은지, 이런 경우 금강산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백지어음의 소지인은 백지부분을 기재(보충)할 권한이 있다. 보충한 자는 보충내용이 틀린 경우 정정할 수가 있고, 정정하는 데 발행인과 수취인의 동의는 필요없다. 결국 금강산업은 대신상점과 수복공업의 승낙을 받지 않고 수취인란을 정정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발행인의 정정인을 받는 것이 안전하다. 발행인의 정정인이 없으면 교환에 돌렸을 때 마음대로 변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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