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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일장춘몽
일찍이 증권사를 명예퇴직하고 수백만 투자자들의 눈에서 눈물을 뽑아낸 IMF 장세에서도 3,000만 원으로 15억 원의 수익을 올려 자칭타칭 ‘선물의 제왕’으로 명성이 날리던 35세의 L씨.
1998년의 새해가 밝으면서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책상머리에는 3년 전 멕시코가 IMF 지원을 받은 이후의 주가 차트가 붙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긴가민가 하는 짙은 회의 속에서 문을 연 증시는 1998년 1월 3일 개장하자마자 374포인트에서 쾌조의 상승 엔진을 걸고 있었다. 곧이어 주가가 400선을 돌파하자 L씨는 선물 매수의 깃발을 올렸다.
1월 중순 주가가 500포인트를 돌파하고 이어서 1월 말 연초 대비 50%가 넘는 600포인트 돌파를 눈앞에 둔 상승세를 구가하자 그의 계좌에는 60억 원에 육박하는 예탁금이 쌓였다. 이어서 상반기에 800포인트대까지 갈 것이라는 전문가와 언론의 장밋빛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100억대 자산가는 시간문제인 듯싶었다. L씨는 다시 매수 포지션에 승부를 걸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랄까? 4월에 들면서 주가의 상승행진에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다. 3월 말 다시 600포인트 돌파를 시도하던 주가는 거대한 M자형 쌍봉을 만들면서 계곡 속으로 서서히 고꾸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L씨는 3년 전 멕시코 증시가 그려놓은 차트의 궤적을 눈앞에 그리면서 다시 반등을 시도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포지션을 꽁꽁 묶어놓았다. 4월이 가고 5월이 오면서 주가가 400포인트를 하향 돌파하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손발을 자르는 비통한 심정으로 청산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의 계좌는 1/5토막이 나 있었다.
주가가 오랜 기간 조정을 받았다고 판단한 L씨는 주가가 400선 아래에서 맴돌자 600선, 아니 800선까지 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하고 남은 10억여 원을 다시 매수 포지션에 베팅했다. 그러나 기다리는 반등은 오지 않았다.
5월이 되자 제2의 금융대란이 온다는 둥, ‘한국에 제2의 위기가 오고 있다’는 둥 공황심리가 팽배하여 투자심리가 극도로 침체된 가운데 주가는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해 여름 주가가 300포인트를 하향 돌파하면서 200선도 위험하다는 참담한 예측이 난무할 무렵, L씨는 매수 포지션을 청산했다. 다시 1년 전으로 돌아간 그는 자신의 모습을 비관하며 독한 소주로써 통한의 세월을 달래야 했다.
그해 8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오전, 어젯밤의 과음으로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증권사 여직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L씨는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수밖에 없었다.
“고객님, 증거금을 더 넣지 않으면 반대매매 들어가요.” 난생 처음 겪어보는, 말로만 듣던 ‘마진콜’ 통지였다.
한 가지 더!
시장의 흐름에 순응하라
시장은 불가사의하다. 시장의 흐름에 역행하면 재앙이 닥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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